본문 바로가기
번역/잡지

번역 2021년 4월호 음악과 사람 도모토 스위밍 스쿨

by 1beat 2021. 6. 17.

오치아이 요이치

회원 번호 023 

1987년생. 도쿄 대학 대학원 학원 정보학부 박사 과정 수료. 츠쿠바 대학 조교수 · 디지털 내이쳐 연구실 주재. 전문은 미디어 예술 외, 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및 지능화 기술을 이용한 응용 영역 탐구. 미디어 아티스트, 연구자, 대학교원, 실업가 등 여러 가지 직함을 갖고 있으며 다양한 활약을 하고 있다.

 

 

도모토 스위밍 스쿨

TSUYOSHI DOMOTO TALK FREE SESSION Vol.23

이전호에서 나라에 거주하는 영화감독 카와세 나오미 씨로부터 소개받은 분은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있으신 오치아이 요이치 씨. 하나의 화제에 점점 흥미로운 지론을 전개해가는 오치아이 씨. 굉장히 재미있어서 도모토 교장이 이번회는 듣는 입장으로 있었습니다 (웃음).

 

 

쯔요시: 처음 뵙겠습니다. 일방적으로 TV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 (웃음).

 

오치아이: 저도 초등학생때 부터 일방적으로 TV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 (웃음). 쯔요시 씨의 인상은 우선 기타를 잘 치는 사람. ENDLICHERI☆ENDLICHERI때부터 음악을 듣고 있고 최신작도 듣고 있습니다

 

쯔요시: 감사합니다

 

오치아이: 기타의 음색이 펑크지요. 저도 기타는 예전부터 치고 있어서요. 일로 기타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펙터를 만드는 건 잘해요. 곡을 들어보면 쯔요시 씨는 일렉 기타 같은 음을 중요하게 한다는 인상이 강하네요

 

쯔요시: 역시 펑크가 좋아서요. 품위 없지만 아름다운 음 이라고 하는 발란스가 좋아요. 기본적으로는 시판 이펙터를 써서 감각적으로 음을 만드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방금 이야기를 들으니까 오리지널 이펙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무조건 재밌는 소리가 나는 게 만들어지겠죠 (웃음)

 

오치아이: 최근이라면, 예를들어 딥 러닝(심층 학습/충분한 데이터량에 의해 기계가 자동적으로 특징을 추출하고 그것을 형태로 만드는 수법)을 사용해서 이펙터를 만드는 방법도 있어서요. 13, 14년 전까지는 디지털 이펙터와 아날로그 이펙터는 완전히 달랐죠. 역시 아날로그 이펙터 쪽이 소리가 좋다고 이야기되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모델링의 이펙터여도 소리의 장점은 바뀌지 않아요. 물론 엄청 볼륨을 올려보거나 이상한 신호를 컴퓨터 소프트로 만들어 넣거나 엉망인 사용법으로 쓴다면 바뀌지만, 그런 것을 하지 않는 한 디지털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미야케: 매우 바쁘신 와중에 어떤 시간에 음악을 듣고 계신가요?

 

오치아이: 이동중은 계속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 올 때에 쯔요시 씨의 음악을 들으면서 ‘펑크의 음색이 강하네’, ‘보컬의 톤의 변조는 자신의 기타에 맞추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요. 또 오늘은 일본인의 피가 섞인 EDM 아티스트의 곡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핀(Gryffin)을 듣거나. 오늘은 일본풍 곡조 감의 음악이 듣고 싶은 기분이었을지도요 

 

쯔요시: 이렇게 항상 생각하시는 느낌이 매우 흥미롭네요. 물론 저도 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살고는 있지만 감각이라든지 감정을 우선시하며 여러가지에 대응하는 타입이라서요. 방금 이펙터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복잡하고 잘 모르겠지만 감각적으로 해석하면 되겠지’로 끝맺음하는 것이 꽤 있어요. 하지만 오치아이 씨는 그것을 끝까지 파고들듯 생각하면서 답을 내놓은 타입이라고 생각하네요. 그건 제가 좀처럼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재밌을 거 같아요

 

오치아이: 꼭 친구가 됩시다. 저 친구가 적거든요

 

쯔요시: 저 ‘친구가 적어요’라고 하는 사람이랑 친구가 되는 거 잘해요 (웃음)

 

오치아이: 그건 굉장히 좋네요 (웃음). 저는 상대가 선입견을 갖게 되면 곤란한 타입이에요. 오치아이 요이치는 이렇게 있어주었으면 한다라는 모습이 세상에는 여러가지 있어요. 아마도 저는 그 모습과 꽤 다른 인간이에요,라고 하는 상황이 여러 부분에서 발생해요 

 

미야케: 오치아이 씨가 관련된 분야마다 요구되는 이미지가 다르죠

 

오치아이: 맞아요. 정신차려보면 자신의 직함이 늘어가는 가운데, 예술 쪽 사람은 저에게 이렇게 있어주었으면 한다, 연구자 쪽 사람은 저에게 이런 식으로 해주었으면 한다 라는 모습이 있는데, 저 자신은 생각한 것보다 직감을 중시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이건 이거, 저건 저거’라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좋지요. 이래 봬도 그다지 이론만 내세우는 타입이 아니에요 (웃음)

 

쯔요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웃음). 파동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계시죠?

 

오치아이: 초음파도 테라헤르츠파도 뭐든지 있나이다 (웃음)

 

쯔요시: 전에 ‘수정은 전기를 통하게 하는가?’라는 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케이블 위에 순도가 높은, 양쪽 끝이 뾰족한 더블 포인트라고 하는 수정을 놓고 음을 내면 BPM이 조금 변화되어 들리고 파형도 변하거나 했어요. 앰프 위에 올려놓아도 기타의 음색이 변했습니다. 그런 놀이를 하고 있으니 양자역학적인 논점과 종교학적인 논점이 교차하는 순간이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서 사람이 기도를 한다는 것도 그래요. 더 말하자면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 같은 것이어도 파동이 나오는 걸까?라고 생각하거나. 그런 연구는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치아이: 연구까지는 해본 적이 없지만 사회안에서 ‘기원한다’라는 건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더 이상 가능한 게 없을 때에 사람은 기도한다 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기원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인간이지 않습니까? 기타와 앰프에는 전기적인 통신방법이 있듯,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죠. 모두 기도하고 있는 상황은 거기에 있는 전원이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먼 곳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기도하고 있다면 통신이 개재되지 않아도 서로 공통되는 상식이나 문화적인 배경이 있는 상황에서 내면을 관찰한다면 거기에는 무언가의 사회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1만 명이 묵묵히 기도를 올리면 공간적으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인간의 안에 내관은 변하겠지요 

 

쯔요시: 응응

 

오치아이: 그렇게 하면 기도하기 이전의 세계와 기도 후의 세계는 꽤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내관이 변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저는 전몰자의 묵념을 보고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1분간 기도한다는 행위는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가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곳에 참가한 사람 가운데 생겨나는 무언가 막대한 의미가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원했다는 사상에는 무언가의 사회적인 관계성이 나옵니다. 그것을 쉽게 말하자면 ‘파동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수정으로 실험한 것도 이런 것이 아닌지 생각하네요 

 

쯔요시: 이런 이야기, 굉장히 재미있어요…… 코로나의 세상이 되고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있나요?

 

오치아이: 이런 세상이 되고나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체성과 축제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신체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머리로 생각해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잔뜩 있지만 신체를 쓰는 액티비티를 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게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축제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페스티벌이나 이벤트의 개최 자체가 곤란하게 되었어요. 하레와 케로 말하자면, 하레가 사라져 버린 사회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굉장히 불안정해요. 바이러스를 발단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세계를 돌아다닐 수 없게 된 것으로 글로벌한 여러 문제에 모두의 눈이 향한 것은 좋은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신체성이나 축제성의 특별성을 생각하는 것은 표리일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주: 하레와 케는 일본에서 전통적 세계관의 하나

하레: 복식을 갖추는 연중행사의 축제, 비일상적인 날

케: 일상의 날)

 

쯔요시: 발란스 말이죠

 

오치아이: 맞아요. 지속 가능한 세계를 목표하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매일 야단법석하게 보낼 수도 없죠. 이 양자를 잘 착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코로나가 2040년 정도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좀 더 디지털로 해결 가능한 게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기술은 2000년대의 것이니까요. 저는 컴퓨터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20년, 30년과 커뮤니케이션의 연구를 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에 대해 사용하는 툴은 20년 전의 기술이 아닌가 하는 패배감을 느꼈고 무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말해도 디지털의 발전은 불가결이라는 동시에 아날로그 한 신체성도 잊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해요

 

쯔요시: 굉장히 공부가 되네요

 

미야케: 사실은 좀 더 이야기를 듣고싶지만요

 

오치아이: 시간이 없는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꼭 다음에도 그럼

 

쯔요시: 굉장히 재밌었어요!

 

 

 

 

 

번역 & 스캔본 이동 금지, 출처 남겨도 이동 금지, 스샷으로 부분 이동 금지

오역, 오타 지적 환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