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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잡지

번역 2023년 11월호 음악과 사람 .ENDRECHERI. 인터뷰

by 1beat 2023. 11. 9.

 

아픔의 너머로

 

.ENDRECHERI.의 디지털 앨범 『Super funk market』은 그의 시선이 지금까지 그 이상으로 타인을 향하고 있다. 애당초 이번 작품은 펑크 사이드와 발라드 사이드로 나누어져 있지만, 발라드 사이드를 제작한 이유의 하나로 ‘돌발성난청이 발병되고 나서 발라드를 부르기 힘들어진 현재, 포기하지 않고 발라드를 마주하는 자세가 누군가에게는 응원이 되었으면’하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감정이나 갈등을 노래로 승화시켜 온 그에게 있어 음악은 셀프 테라피적인 요소도 있었을지도 모르나, 이 앨범에서 보여준 것은 그 너머의 단계 ——— 마음을 해방하고 타인과 어우러지는 것, 자신답게 살아가는 기쁨을 노래하는 모습이었다. 도모토 쯔요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을 듣고 인터뷰를 감행하고 확신했다. 앞으로 그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다 하여도 반드시 그는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로 강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투어가 시작되고 첫 공연인 고베에서의 2일간을 막 끝냈는데, 어떠신가요? 

 

쯔요시: 코로나에 의한 룰이 있었을 때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든가 스탠딩을 하지 못한다든가, 여러 가지 규제가 있었는데 그것도 해제되어서요. 관객분들이 마음껏 들썩이고 즐겨주실 수 있는 투어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어쨌든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구성과 세트리스트를 짜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라이브 자체의 자유도가 꽤 커졌어요. 수년 전에 했던 것 같이 자유도가 높은 펑크라고 할까, 뮤지션이나 댄서도 포함해서 아티스트가 자유를 확신하는 라이브라고 생각해요. 관객분들도 상당히 해방적으로 즐겨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층이 변화한 부분도 있지 않나요?

 

쯔요시: 있지요. <funk love>라는 무료 정보 회원 서비스를 만든 것도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회장에 오실 수 있게 되었네요. 남성분들도 늘었고, 인생의 대선배도, 자녀분들도 오셨어요.  정말 그런 의미에서도 장르레스감도 있어서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고, 저로선 ‘부디 몇 살이 되어도 펑크를 즐겨주세요’라는 느낌이라. .ENDRECHERI. 라이브는 그런 공간이기 때문에 오프닝부터 엄청나게 달아오르죠. 리허설도 그다지 하고 싶어지지 않는 세트리스트예요(웃음). 사운드 체크는 하지만, 본방은 현장의 분위기로 하자라는 정도로 스스럼없는 구성으로 되어있어요. 코로나의 룰을 채용하고 있었을 때에는 착석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규제가 있으면서 ‘해방하라’고 하는 건 어려웠기 때문에 2020, 2021년쯤의 라이브는 영상이나 조명을 진화시켜 음을 연출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그 스킬이 올해 헤이안신궁에서의 봉납연주를 할 때에도 매우 도움이 되었고, 코로나 사태로 배운 것이 반영된 스테이지가 되었다고도 생각돼요. 코로나 시기에 ‘좀 더 이러한 라이브로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좋은 의미로 폭발적으로 들어갔고, .ENDRECHERI.라고 할지, 도모토 쯔요시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라이브일지도 몰라요

 

—쯔요시 씨 본인은, 스테이지에 서있는 행복감을 즐기고 있잖아요? 이곳에 서있는 것으로 가장 음악과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할까. 

 

쯔요시: 응, 코로나라는 시대를 경험하고 이렇게 라이브가 가능한 건, 코로나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고, 한창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코로나를 경험한 것으로 인해서 사회에 관해서도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게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현실은 변해가지 않는 안타까움을 쭉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들이 변하는 것으로 현실을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은 .ENDRECHERI.의 앨범의 가사에도 잔뜩 실어놨으니까요

 

—오히려 그것만을 노래하고 있다고 할까요

 

쯔요시: 맞아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살아가는 것으로 고민하거나 갈등하는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시대가 펼쳐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지금은 어찌 됐든, 그저 단지 그런 것들을 느끼며 보내고 있어요. 코로나 사태라는 시대에 대해서도 지론은 있지만, 어떤 것이 정답이고 오답이라는 해답은 안 나오니까.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지만 양쪽을 다 들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건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다시 한번 배운 것이기도 해요. 어느 쪽의 의견이 치우쳐지게 된 때에 ‘그럼 이쪽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나날을 보내야 할까?’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면, 말로 내뱉는 것도 타자를 치는 것도 정말 어려워요. 그러니까, 어쨌든 저는,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은 작품에 담을 수밖에 없나라고 생각해요. 남은 건, 그야말로 라이브의 퍼포먼스에 담을 수밖에 없고. 라이브라면 관객과 직접적으로 마음과 마음을 통하도록 하며 그들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자나 말로 여러 가지 일이나 마음을 전하는 건 굉장히 어려워요 역시. 그러니까 이 괴로운 시대를 경험하는 와중에 라이브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서 굉장히 큽니다

 

—조금 전에도 촬영 전에 대기실에서 라디오 녹음을 하셨는데, 쯔요시 씨에게 있어서 라디오도 그런 장소에 가까운가요?

 

쯔요시: 네. 아까 라디오에서도 ‘자신의 의견이 요구될 때 제대로 정리해서 전하는 걸 잘하지 못한다. 문장으로 하는 편이 전달하기 쉽지만 말로 전달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청취자의 상담 메일을 읽었어요. 저는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런 자신이 싫다면 변하도록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일에는 바꿀 수 없는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역시 서로를 배려하는 것으로 밖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않나 싶어요. 코로나 때도 라디오를 통해서 의료 종사자분들의 삶의 목소리를 여러 가지 듣고 ‘이런 분들이 있어주셨기 때문에 지금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거나, 라이브에서는 가끔 눈물을 흘려버리며 노래했던 적도 있었지만. 자신이 즐겁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야말로 배려하는 것을 생각하고 싶다고 다시 한번 깨달은 최근 몇 년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라이브를 하고 있어도 ‘코로나의 룰이 변했다, 잘됐다’라는 느낌은 되지 않아요. 정말로 코로나가 끝난 것도 아니고, 우리들이 변한 것뿐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투어 타이틀도 <END RE ME>라고 했어요. 주변이나 시대를 따라 흘러가지 않고 스스로를 마주하고, 최대한 자기 자신이나 상대방을 생각하고, 시대를 바꿔나가고 싶다는 것을 의식하며 라이브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을 듣고 생각한 것은, 최근 수년간 작품을 디지털 릴리스하고, 본 잡지의 대담 연재에서도, 본인의 음악방송(『ENDRECHERI MIX AND YOU』)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제껏 교류가 없던 아티스트들과 만나 점점 마인드가 밖을 향해갔고, 그것이 이 앨범에도 결실을 맺었다는 거예요.

 

쯔요시: 행동 범위나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 그런 만남이 생기거나 작품에 영향을 주는 계기도 물론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걸로 제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새로운 만남과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새로운 발견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것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한편으론 거기에 오해가 생기거나, 의미가 잘못 받아들여지게 되거나 하는 일도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렇게 많은 걸 이야기해오지 않았으니까요. 그 이유도 좀 전에 이야기했던, 누군가가 바라는 완벽한 나란 만들 수 없고, 그렇게 저는 그저 저 자신을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밖에 없어요. 대담 연재도 그렇고, 방송도 그렇고, 그런 흐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저와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좋았다”라고 말해주실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ENDRECHERI.의 밴드 멤버는 가족 같은 존재예요. 오랜 시간 쌓은 서로의 애정이 작품에 들어가 있고, 저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담아 노래할 수 있어요. 울정도로 웃어서 숨을 못 쉬겠을 상태로 레코딩할 때도 있고, 눈물을 참아가며 노래를 녹음할 때도 있어요. 감염 대책을 하면서 레코딩을 하는 것도 필사적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엔지니어인 후쿠다(사토시)군이나 스튜디오의 어시스턴트를 따르는 사람, 그리고 Gakushi(키보드)군도, “이거 쯔요시 전용 마이크로 할 테니까”라든지 “잘 소독했으니까 괜찮아”라고 말해주거나, 다들 굉장히 생각해주고 있어요. 그런 배려에 힘입어 이 앨범이 완성되었으니까 그런 것들도 전해진다면 좋겠어요. 다른 누군가가 만들 수 있을 같은 앨범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틀림없네요. 펑크 사이드만 보아도 두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역대 최고로 캐치한 앨범이기도 하고. 이쪽에서도 꽤 감회가 깊다고 할까. Gakushi 씨의 어레인지의 훌륭한 수완도 전면적으로 느껴지고, 그는 정말로 멋진 음악 파트너네요.

 

쯔요시: 응. 앨범에 관련된 모두가 그렇지만, 가장 가까이서 도움을 준 게 Gakushi 군과 후쿠다 군이니까요. 이 두 사람이 내 안에 있는 펑크를 어떻게 하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아웃풋 할 수 있는지, 둘 다 재주 있는 부분과 서투른 부분을 가진 채로 사랑의 끝까지 함께 고민해 줬어요.  그 외에 참가해 준 뮤지션들도 ‘그럼 이 프레이즈가 좋을까’라든지 ‘이 어프로치로 해볼까’라고 함께 곡을 구축해 가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진짜로 어째서 이렇게까지 페이즈가 변했을까 싶을 정도의 내용이 되었어요.

 

쯔요시: 어떤 건데요?

 

—이전 디지털 싱글의 「LOVE VS. LOVE」, 「1111111~One Another’s Colors~」, 「MYND」에도 현저히 그랬지만, 그루브로서의 한 덩어리라고 할까, 노래 전체가 리프처럼 된 것이 지금의 .ENDRECHERI.의 시그니처가 되었구나 라는 거요.

 

쯔요시: 그렇게 듣고 생각나는 건, 처음에 말했다시피 스스로가 원하는 세계라는 것이 있어서요. 그건 현재의 세간에 있는 말로 해보자면 ‘평화’라는 것이지만, 제가 추구하는 것은 정말 그것뿐이에요. 어떻게 해서 제가 음악에 그 평화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소재나 요소가 되면 좋을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몇 번이고 말하지만, 역시 멤버와의 배려가 자연스럽게 공명하는 걸로 이 장르레스한 그루브나 따뜻한 그루브가 태어나니까요. 그걸 라이브에 가져가 연주할 때, 이번 고베에서의 이틀도, 관객분들이 어떻게 이 음악에 스스로가 참가할 수 있을지를 능동적으로 찾아주시는 느낌이 굉장히 즐거웠어요. ‘아아, 엄청나게 평화롭다’라고 생각했죠. 이제부터 아직 투어는 계속되지만 벌써부터 헤어지기 아쉬울 정도로요

 

—이 음악을 말이죠, 더 널리 전하고 싶다, 폐쇄된 세계에 담아둬선 안된다는 멤버의 의지마저 느껴지네요. 특히 Gakushi 씨의 어레인지에서요.

 

쯔요시: 아아. 아니, 진짜로 그 애정은 저도 굉장히 느껴요. Gakushi 군은 팬미팅 때도 관객분들에게 어떻게 펑크의 즐거움을 전달할지를 의식해 줬어요. 그런 경험도 없으면서 팬미팅 때 처음으로 스피치를 하고 펑크의 역사나 문화를 전해주고. 예를 들면 “프린스는 이런 사운드감이 있죠”라고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그 곡이 흘러나오면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까, “자 그럼 내가 만들게”라고 프린스 느낌의 오리지널 사운드를 만들어주거나. 그리고 코러스라는 개념에 해당되지 않는 집단의 목소리가 필요할 때에는 Gakushi 군이나 타케우치(토모야스/기타) 군도 노래해 주었고. 그것도 이상하게 뜨는 것 없이 제 목소리에 잘 어우러지고, 하지만 집단감이 있는 목소리죠. 그런 것도 전부 계산해서 노래해 주고, 그건 제가 쭉 목표로 하는 파트레스(partless)한 감각이에요. ‘당신은 기타고, 당신은 키보드를’이라고 하는 개념이 없어지는 느낌. 그런 애정의 연쇄가 응축된 그루브를 낳는다고 생각해요. 

 

—펑크 사이드만으로도 충분히 성립되는 앨범에 발라드 사이드를 공존하게 한 것도 쯔요시 씨의 이 앨범을 널리 전하고 싶다는 신념을 느꼈어요. 

 

쯔요시: 발라드 사이드도 만든 이유가 있다면 두 가지 정도 될까요. 하나는, 발라드 쪽이 듣기 쉽고 좋아한다고 하는 리스너도 있으니까. 『THE FIRST TAKE』에서 <街>와 <これだけの日を跨いで来たのだから>를 들어주신 타이밍이기도 했으니까요

 

—『THE FIRST TAKE』는 발라드 사이드를 만드는 것이 결정되고 나서 하게 된 건가요?

 

쯔요시: 아뇨 아뇨, 전혀요.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THE FIRST TAKE>하실래요?”라고 듣고, “아아, 네. 하겠습니다” 였죠. 저로서는, 코로나 사태였기 때문에 봐주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응원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街>와 <これだけの日を跨いで来たのだから> 두 곡을 골랐어요. 실제로 노래해 보고 생각한 건, 피아노 한대의 발라드여도 자신의 펑크함은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ENDRECHERI.의 테마 컬러는 보라색이고, 빨강과 파랑을 섞어 보라색이 되는 듯한, 정적임(静)과 동적임(動)을 섞어 보라색이 된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서 발라드 사이드를 만들기로 했어요. 곡 수는 많아지지만 열심히 해보기로 했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지금의 저는 발라드를 부를 때 아무래도 고전하게 되고 그러니까요

 

—귀에 대한 것도 있으니까.

 

쯔요시: 맞아요, 그게 있으니까, 안전한 선에서 생각한다면 발라드는 2곡이나 3곡정도로 절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발라드만 11곡이나 수록하게 되면 스케쥴적으로도 엄청나게 힘들죠. 스케쥴이 힘들어진다는 건 수면 시간도 줄어드니까 귀에도 영향이 나타나지만, 그걸 컨트롤하면서 열심히 했어요. 스스로가 잘하지 못하거나 서투른 걸 일부러 트라이하고 거기에 마음을 담는다면 여러 용기나 힘으로써 전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쯔요시 씨 자신이 발라드를 부르는 것으로 현재의 본인과 마주하고, 자신을 알고, 그것을 리스너에게 들려드리는 것도, 이 앨범의 메세지가 된다는 거네요.

 

쯔요시: 이것이 지금의 저이고, 몇 년 후의 미래의 자신을 응원하는 자세도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결국, 돌발성난청이 되고 나서 계속 ‘왜 발라드가 부르기 힘들어?’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너무 어려워서요

 

—노래하지 않으면 계속 물어볼 것이고요.

 

쯔요시: 맞아요. 왼쪽 귀는 이미 계속 손가락을 넣고 있는 정도로 들리지 않으니까. 최근에도 TV앞에서 음량을 올리고 ‘아아, 이 음량으로 뭐라고 말하는지 안 들리네’라고 하며 조금 시무룩해지기도 했었어요. 음량을 올리면 올리는 대로 어떻게든 들리지만, 결국 소리는 찢어지게 울리는 후유증도 있고요. 인이어를 할 때도, 쿠션으로 작은 솜뭉치를 고막 가까이에 넣고, 계속 오른쪽 귀만 사용해서 노래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면 피치(Pitch, 음의 높낮이)가 생각대로 잡히지 않죠.

 

쯔요시: 발라드는 성량을 내고 롱톤으로 부를 때가 많으니까, 예를 들어 헤이안 신궁처럼 천장이 없는 회장이라면 꽤 목소리를 크게 내도 괜찮지만, 회장에 따라서는 성량을 내면 두개골이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후유증이 괴롭혀요. 그래서 실제 성량 자체는 그다지 내지 않고, 하지만 성량이 나오듯이 부르는 테크닉을 수년에 걸쳐 습득했어요. 아직 모색 중인 건 잔뜩 있고,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에는 가능한 한 전하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요. 왜냐하면 같은 마음인 사람에 대한 응원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음악을 통해서, 노래를 통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곳, 여기에 서있다는 것은 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도 포함해서 발라드를 불렀어요

 

—도모토 쯔요시의 음악인생은 언제나 역경과 대립하고, 그것을 음악 표현으로 승화해 가는 반복됨이라고 생각해요.

 

쯔요시: 네

 

—어느 시점 까지는, 그건 셀프 테라피적인 측면이 강한 적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면 년, 특히 코로나 이후의 3년간은 자신의 삶의 방식이라는 메세지가 사람들을 향하고 있죠.

 

쯔요시: 그렇네요. 이 앨범이 완성되기까지 굉장히 힘든 시간을 계속 보냈는데요. 응, 뭐…… 그렇네요…… 제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속상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나 우울함이나 즐거움, 그러한 것들을 어쨌든 전부 여기에 담았어요. 그래서 들어주신 분들이 ‘나도 이렇게 매일을 살고 있으니까 고독하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우울해지거나 상처받고 속상하기도 해요. 그걸 어떻게든 열심히 극복하고, 다시 웃는 얼굴에 다다르게 하는 걸 반복하고 있죠.  ‘그러니까, 나와 함께 걸어가자’라는, 그런 메세지로 들린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를 닥치는 대로 시도한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깔깔 웃으면서 레코딩을한 시간도, 낙담하며 다시 노래한 시간도 꼭 필요했어요. 그게 제대로 스파이스로 작품에 들어간 것으로 인해 엄청나게 제 생명의 냄새가 나는 펑크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발라드 사이즈는 신곡을 쓰지 않아도 예전 곡의 리어레인지로 성립되었을 거잖아요?

 

쯔요시: 네

 

—하지만 신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저는 발라드 사이드에서 유일하게 비트가 울리는 「あい」라는 곡이 인상적인데요. 지금의 도모토 쯔요시는 이렇게나 포키(folksy)하고 심플한 곡을 쓰는 건가 싶었죠

 

쯔요시: 이건말이죠, 코로나 사태로 쓴 곡인데요.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렇게나 혼돈스러운 시대가 오고 판데믹이 세계에 일어나게 되었을 때,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나 가까이에 있어주는 존재에 대해 감사를 누구든지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파트너인 사람도, 자식인 사람도, 반려동물인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곡을 쓰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러브송을 써야지 하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으니까, 코로나 관련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가족끼리의 인연이라든지 여러 사람의 사랑의 형태를 알았을 때 마음이 움직인 거죠

 

—펑크 사이드의 「I, Knew Me」가 이 앨범 전체의 메세지를 포괄하고 있지요. 스포큰 워드와 랩의 사이를 가는 듯한 플로우로 시작해서, 미니멀한 사운드 프로덕션으로 구축한 .ENDRECHERI.류의 성가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곡은, 라이브에서도 이제부터 오랫동안 중요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쯔요시: 이 「I, Knew Me」라는 키워드 자체는 ZOZO TOWN과의 콜라보레이션을 계기로 받은 키워드인데요

 

—그렇죠

 

쯔요시: 여러 사람들을 응원하는 굉장히 좋은 말이고, 그 말의 반짝임에 매료당해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꽤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만든 거라서 꽤 즉흥적이지만요

 

—ZOZO TOWN과의 콜라보레이션도 그렇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도모토 쯔요시가 외부로 열리고 향하는 마인드도 현저히 드러나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쯔요시: 그걸 조금 쇼와적인 느낌으로 말해보자면, 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서, 자신이 마음에든 역에서 내리고, 그 거리를 산책하고, 여러 가지 경치를 보고, 그 경치를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 그곳에서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뭔가 그런 감각. 그 그림을 본 누군가가 “이 그림은 뭔가요?”라고 물어본 것으로부터 대화가 시작되고, “어디 어디에 갔을 때 그린 그림이에요”, “굉장히 예쁘네요. 가보고 싶어요” 같은, 그런 자연스러운 만남이나 대화에 다다른다고 할까.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열차를 탄게 아니지만, 하는. 하지만 이 앨범에는 그런 느낌이 전면적으로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지키기 위한 피난처처럼 시작된 도모토 쯔요시의 음악이 이동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이나 만남을 얻어가는 것 같네요.

 

쯔요시: 맞아요. 스탭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그중에는 아이디어맨도 있어요. 그래서, 저도 .ENDRECHERI.의 현장에서는 매니저에게 가사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거나 그런 식으로 여러 사람들의 감각을 넣어가며, 저는 곡을 쓰고 싶어요. ‘입장상 내가 그런 행동을 해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진지한 사람도 있으니까 그게 공전을 거듭하는 일도 있지만요. 하지만, 정말로 저는 그 정도의 자유도를 갖고 .ENDRECHERI.를 해나가고 싶으니까요. .ENDRECHERI.를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이 .ENDRECHERI.를 만나는 계기가 된다. 그 예감이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스트리밍에서 바로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건 .ENDRECHERI.가 시작된 무렵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죠

 

쯔요시: 역시 <funk love>라는 사이트를 만든 것도 커서요.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하고, 라이브에 놀러 오셨으면 하고, 즐겨주셨으면 한다는 마음도 이 앨범에는 담겨있어요. 물론, CD로 원하시는다는 분들이 일본은 아직 많이 계시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 <Super funk WEB market판>이라는 특전 영상이 붙은 CD를 인터넷에서 판매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우선 디지털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쭉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정말로요, 긴 시간을 계속.

 

쯔요시: 그러니까, 제가 이러한 음악 어프로치이고, 작품을 전달하는 방법을 실현함으로써 똑같이 어프로치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특별히 사명감 같은 건 없지만, 제가 최대한으로 즐기고 행동한 것이 누군가의 무엇에 이어지면 좋겠고, 그런 앨범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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